Monday, September 22, 2014

단어: 김게이씨 보호자 되시나요?

이 기사는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 의해 쓰여졌다. 한국어 공부하기 위해서 여기에 올렸다. 

새로운 단어를 공부하고 싶어하면, Memrise에서 단어장을 만들었다. 
보호자, guardian
대학 졸업 후 밥벌이를 위한 나의 회사 생활은 한결같이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는데, 그 스트레스가 내 그릇을 넘칠 때면 한 번씩 병원에 가곤 한다. 입사 후 보통 두어 달에 한 번은 링거를 맞으러 병원에 가고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응급실에 실려갔는데, 몇 달 전에는 겨우겨우 기워 막던 그릇이 빵 터져버려 한 달 정도 병가를 내고 입원해야 했었다.
밥벌이, livelihood
그릇, 능력
링거, IV drip
겨우겨우, barely
깊은 새벽 자다 깨 내가 낸 비명 소리는 평소에 자주 지르는 출근하기 싫어 죽겠다는 괴성과는 많이 달라 형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바로 응급실에 갔더니 무슨 검사를 할 때마다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했는데, 서로가 보호자가 된 게이커플에겐 흔하디 흔하다는 바로 그 상황이 우리에게도 그렇게 연출되고 있었다. 김게이씨 보호자 되시나요? . 가족이세요? , 아니요. 가족은 아니고 같이 사는 사이인데요. 법적으로 나와 가족이 아닌 형은 결국 무슨 보증서 같은 거에 서명을 하고서야 내 보호자가 되었다. 그나마 무슨 검사 무슨 검사 할 때는 이렇게라도 됐는데, 마취와 수술 동의서를 쓸 때는 곧 죽어도 우리 친누나가 와야만 했다.
괴성, screech
첫 며칠 동안은 진통제 효과 끝나는 시간에 맞춰 신음을 삼키며 으르렁대느라 목이 다 쉬어 있는 수준이었으니, 이렇게 제대로 앉지도 못하던 일주일 동안은 형과 누나가 번갈아 가며 왔다 갔다 했다. 남자와 결혼식까지 올렸다는 걸 알 리 없는 회사에 여자친구가 입원했다고 둘러댄 형은 며칠 동안 늦은 출근을 했고, 누나는 형이 출근할 때쯤 두 돌 한 돌 지난 조카 둘을 데리고 병실로 찾아와 내 옆에 있어줬다. 아기 둘 데리고 나까지 돌보면서 좁은 6인 병실에 몇 시간 동안 있어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제는 짐작할 수 있지만, 그때는 내가 아파 정신이 없다 보니 조카들한테 웃는 얼굴 한 번 보여주지도 못했었다. 나중에 형이 해준 이야기이지만, 누나는 내 옆에 더 많이 더 오래 있어주지 못한 거에 대해 형에게 굉장히 미안해 했다고 한다. 난 이 말을 듣고 으잉ㅇ_? 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나는 누나와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음, groan; moan
으르렁, with a groan
짐작하다, guess; assumption
형보다 누나가 스스로를 '날 더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겠지만, 이게 굳이 무의식 중에 형이 내 남편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저 언제나 나는 누나에게 한참 어린 막둥이 동생이었으니, 내가 이성애자여서 아내가 있었어도 누나는 나의 아내에게 미안해했을지 모른다. 다만 내가 느낀 건, 누나가 나 돌본다고 고생한 거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고맙고 또 미안하지만, 형이 병상의 내 옆에서 쪽잠을 자고 회사를 늦게 나가고 한 거에 대해서는 그냥 한없이 고맙기만 했다는 거다. ,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하단 말 하지 않는 거야, 라는 김탄 정도는 되어야 내뱉을 만한 오글거리는 드라마 대사 따위를 떠올려서가 아니라, 정말로 형에게는 미안하지가 않았다.
무의식, unconsciousness
막둥이, the youngest
병상, sick bed
퇴원 이삼 일 전쯤이었나? 이제 겨우 죽 떼고 병원밥 먹기 시작한 내가 빵이 너무 먹고 싶다고 졸라 병원 근처 빵집에 갔을 때였다. 나는 식빵을 찢어먹으며 병실에서 정주행을 시작한 내가 어떻게 니네 엄마를 만났냐면이 친구의 엄마를 만나 불륜은 저지르는 내용이 아니어서 예상 밖이었다는 둥, 그래도 남자 주인공이 꽤 귀엽게 생겨 볼 만한 드라마라는 둥 이따위 말을 건네고 있었는데, 형은 지난 며칠 동안 내가 자기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새삼스레 느꼈다는 진지한 이야기를 해서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내가 아픈 게 속상해서 친구에게 전화 걸어 펑펑 울었다는 소리를 들으니 아, 이 사람은 대한민국 법이 뭐라 그러든 말든 정말 내 하나뿐인 보호자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결혼할 때 회사에서 축하금 못 받고 축의금 못 받고 휴가도 못 받고 이런 건 그냥 좀 손해 보는 느낌 뿐이었는데, 둘 중 하나가 아파 보니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사회라면 마음대로 아프지도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간절히 드는 경험이었다. 형과도 한 이야기지만, 10년은 좀 부족할 것 같고, 20년 안에는 그래도 동성 커플을 인정해주는 법적인 장치가 우리나라에도 생기기 않을까 생각되는데, 그럼 적어도 쉰 살이 될 때까진 병원도 덜 가야 할 테니, 몸에 좋은 거 먹으면서 운동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우리 게이들에겐 또 한 가지 더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언제 아팠냐는 듯이 어제도 그제도 술을 쭉쭉 들이켜고 있는 나는 병원 덜 가는 거 안 될 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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